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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화된 슬픔의 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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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 방식을 바꾸면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설명된다고. 별개인 줄 알았던 것들이 연결되어 보인다고.

이 깨달음을 더 슬플 수 없는 방식으로 겪고야 말았다.

기억은 지난 수 년에 집중되어 있으나 실상 일생의 모든 방면 모든 순간에 걸쳐 있었던 어느 가설을 불현듯 발견했다. 입증하는 데에는 큰 노력이 들지 않았다.

나는 이 사회에 적합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힘겹게 살아가지만, 누구나 있기 싫은 군대에서조차 누군가는 현부심을 받는 것이다. 이 경우는 민간으로 나올 수나 있지 나는 달리 갈 곳도 없다는 사실이 숨막힌다.

자신을 불구로 정의한다 해도 주저앉고 싶지는 않다. 패배주의는 무엇보다 싫다. 하지만 그렇다면 무엇을? 한 마리 넙치로서 나무 오르기를 계속해야 할까?

이름 붙인 적 없었던, 항구화된 슬픔을 자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