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랬을까
아주 최근 수 일을 넘는 시간에 걸쳐 대한민국 국적자 및 체류자들의 뇌리를 강렬하게 스친 의문이 있다. 대체 왜 그랬을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단서는 상당히 제한적이다. 우리에게는 비상 계엄을 선포한 담화의 생중계 영상이 있다. 그 직후 국회의사당 근처의 상황을 담은 실시간 취재 영상이 있다. 계엄군이 본관 진입을 시도한 증거도 있다. 시민들이 저항한 내용도 있다. 계엄 해제 요구안이 결의된 과정도 영상으로 담겨 있다. 몇 달 전부터 야당 인사들에게서 제기된 의혹도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고, 사건 이후에 일부 군 관계자들이 양심 고백한 내용도 담겨 있다. 이 정도면 관련된 자료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의혹을 떨칠 정도로 충분한 증거는 결코 성립하지 못한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아직도 묻고 있다. 왜 그랬을까?
숱한 음모론이 오가고 있다. 이 음모론은 백이면 백, 계엄령이 즉시 해제 결의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을 상정하고 전개된다. 본인의 지지율이 이미 바닥을 기고 있는 마당에 그나마 유력한 여당 인사를 부상시켜 차기 대선에서 밀기 위함이다, 자신에게 수사망이 바짝 조여온 것에 위기감을 느껴 증거를 인멸하기 위함이다, 여야가 이미 사전에 알고 있었고 다 짜고 치는 쇼이기 때문에 대통령은 야당의 프락치나 다름 없다, 사실상 어차피 무용한 시도였다는 것을 대통령이 이미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모두가 흐릿한 퍼즐을 짜맞추고 있는 것이다.
이는 얼핏 그럴싸해 보인다. 계엄 해제는 전적으로 국회 즉 입법부의 권한으로 분명한 여소야대인 현 정국에서는 계엄령이 가능한 한 신속하게 해제 결의될 것이 분명했을 것이다. 알려진 무장 공비 침투 사건이라든가 기타 대규모 사회 혼란의 징후가 전무했으며, 대통령 개인에 대한 지지율이 기록적으로 낮았던 만큼, 비상 계엄의 설득력은 극도로 미약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심지어 계엄 시도에 관한 의혹은 주요 야당 인사들에게서도 제기되어 왔으니 정보 단속도 철저하게 이루어지지 못했고 그 사실을 대통령 측에서도 파악할 수 있었다는 점도 자명하게 짐작할 수 있다. 야권에서 제기된 의혹이 과장되고 허무맹랑한 음모론 격으로 치부되고 말았던 것은 가능성이 비현실적으로 낮았고 발상이 황당하게 비합리적이기 때문이었다.
24년 12월 3일, 윤석열 정부는 종북 세력의 척결을 목적으로 비상 계엄을 선포하여,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 활동을 금하고 언론과 출판의 통제 등을 골자로 하는 포고령을 잇따라 발표하고 만다. 이는 “모두의 예상을 빗나갔다”고 표현할 수 조차 없는 것이, 그 누구도 진정으로 예측하지 못했던 조치로, 현 국무총리조차 국무회의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전혀 파악하고 있지 못했던 내용이라고 알려져 있다.
우리가 어떤 사항에 대하여 진실을 알고 싶을 때 취할 수 있는 방법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관련된 사실, 주장, 관측 등을 끌어모아 정돈한 후에 진상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 느슨한 방식은 과학적 방법론 뿐 아니라 어떤 학문적 절차에도 통용될 수 있는 것이다. 인류 지성의 멈추지 않는 갈망을 단계적으로 충족시키며 진리와 지식에 대한 탐구를 매 순간 다음 단계로 이끌어 온 이 길의 치명적인 결점이 있으니, 바로 충분한 양의 근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면 우리는 어떻게 사고하고 문제에 접근해야 할까? 그것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다. 어떤 문제의 답이 진정으로 탐구되고 밝혀지기 위해서는 충분한 근거가 축적되어야 한다. 그러고 나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그 방법을 적용하면 된다. 그러니 그 전까지는 어떤 방법을 취해야 할지에 대해서 그 무엇도 진정하게 옳은 방안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예컨대 검은 공과 하얀 공으로 가득한 상자에 눈을 가린 채 손을 넣어서 뽑은 공은 무슨 색일지에 관한 문제는, 그것을 끄집어 내기 전까지 무엇도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문제들에 대해서 영원토록 사고와 판단을 유보하는 것만이 옳은 길이라 주장하는 것은 또한 온당치 못한 일이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문제는 충분한 근거가 없는 문제가 대부분이며, 합리적인 양의 근거를 쌓기 전에 판단을 내려야 할 필요가 있거나, 어쩌면 근거를 확보할 수 있을지조차 아직 알 수 없는 것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더 이상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괜찮은지 아닌지, 즉 정오에 관한 것이 아니라 실용성의 문제가 된다. 이는 기실 인간의 인지 체계가 작용하는 방식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비록 전적으로 이성적이지는 못할지언정 비교적 우리에게 더 편안하고 본성에 걸맞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논제의 대표적인 예로 근래 온라인에서 어느 정도 화제가 되었던 시뮬레이션 우주론이 있겠다. 이는 몇 가지 느슨한 근거를 바탕으로 우리가 사는 세계는 실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우주 안에서 실행되고 있는 시뮬레이션일 가능성이 유의미하게 높다는 내용이다. 이를 뒷받침하거나 반박하는 진정한 증거는 파악되기 어려울 것이다. 시뮬레이션이 맞다면 반박하는 증거 또한 시뮬레이션의 일부일 것이며,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해도 실재하는 세계의 특성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서 우리는 아는 내용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논란의 여지는 있겠으나 내가 선호하는 설명이 있는데, 결론은 시뮬레이션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세계가 실제 우주라는 것을 뒷받침하는 데에는 첫째, 우주의 존재, 둘째, 우주 내 주체의 감각의 타당성이 요구된다. 반면에 시뮬레이션 우주를 지지하기 위해서는 첫째, 우주의 존재, 둘째, 그 우주에서의 시뮬레이션 실행 가능성, 셋째, 그 시뮬레이션의 정교함, 넷째, 시뮬레이션 내 주체의 감각의 타당성이 요구된다. 아주 단순하게 비교하자면 전자가 후자보다 필요한 설명이 더 적다.
이는 흔히 오컴의 면도날로 알려진 방법이다. 영원무구하게 정확한 방법이라고 하기에는 큰 무리가 있지만, 증거가 없는 수준에서 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접근 방식 중에서는 손에 꼽게 우수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소 난해할 수 있는 예제를 벗어나 보다 일반적 어구로 되풀이하자면, “가장 단순한 설명이 보통 최선”이라는 것이다. 여러분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눈에 보이고 의미가 읽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어떤 사람이 이 글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글롭슈비안이 트락슈미르트-판트 집합으로부터 생성된 츄츄릿크르스릴에 기반하여 여러분의 작스프르그릿에 걍츼립프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어떨까? 자칫 헛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정확하게 3591년 9개월 2일 17시간 3분 22초의 시간을 준다면 후자가 어떻게 말이 되는지를, 사전에 이해하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다. 이때 여러분은 전자를 믿겠는가, 후자를 믿겠는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니까 이 우당탕탕 계엄 소동과 그 배경 또는 여파에 대해서 우리는 아직 정확하게 아는 바가 몹시 적고 불충분하다.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여러분이 그럴싸하다고 믿든 아니든, 그것들은 전부, 잘 쳐 줘야 거의 전부가 음모론에 지나지 않는다. 어차피 누구도 결정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에 눈 가리고 다트 던지듯이 에라 모르겠다 하고 아무나 아무 말을 지껄이는 것이 현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적용할 수 있는 사고는 너무나 명백하다. 충분한 정보가 모이기 전까지는 가장 단순한 것을 잠정적으로 택하는 것이다. 어째서, 비상 계엄을 선포하면서, 군부를 충분히 장악하지도 못했고, 내각이 이해할 수 있는 방향도 아니었고, 국회의 의결을 제지할 수 있는 방안이 확실한 것도 아니었고, 국민의 지지를 받을 만한 비상 사태도 없었고, 반대 세력에게 계획이 은폐된 것도 아니었고, (이 자리에 기타 등등 아무것이나 삽입할 것), 무력으로 정보의 유통을 막을 여건이 된 것도 아니었을까? 그 답변은 지극히 단순하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거부감 때문일 수도 있고, 어떤 편견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오컴의 면도날은 그렇게 동작하지 않는다. 너무나도 애석하지만 쉽고 빠른 설명은, 우리의 국군통수권자가 디시인사이드 군사 갤러리에서 부관리자를 맡고 있으며 네이버 가상 국가 카페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가상의 정치외교학과 지망생 18세 고등학생 박원준 군보다도 더 허술한 머저리라는 것이다. 이것이 담백하고 제일 전제를 적게 요하는 시나리오라고, 그리고 그것은 다른 방법론을 적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증거가 쌓이기 전까지는 설득력 있는 유일한 해설이라고, 나는 과감하게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