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 능력, 접근

15855바이트

비상 계엄 해제가 가결된 직후 작성한 글이지만, 블로그에 올라오는 글들이 으레 그렇듯, 즉시 올리지 않고 있다가 뒤늦게 올린다. 그래도 일주일 정도면 내 블로그에서는 속보급 속도이다. 가능하다면 K-pop 역사에서 다분히 상징적인 <피 땀 눈물>과 대구를 맞추고 싶었지만 아쉽게 실패하고 말았다. 혹시 그럴싸한 대안이 있다면 제보해주시길 바란다.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변을 권한, 능력, 접근의 차원에서 접근해보고자 한다.

권한이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허락되는지에 대한 여부이다. 자유 민주 사회의 시민으로서 나는 그 누구에게도 신체의 자유 등을 침해할 권한이 없다. 설령 내가 누군가를 감금하거나 폭행한다고 해도, 그것은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을뿐더러 현 체제가 동작하는 한은 법정의 서늘한 심판만이 예견되는 것이다. 반면에 일반적인 경우 나는 스스로의 요의를 해결할 권한이 있으며, 업무 상 회의라고 해도 해당 목적으로 자리를 비우는 것이 어느 정도 용인된다는 사실이 꽤나 강한 증거라고 할 수 있겠다.

능력이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이 되는지에 대한 여부이다. 나는 글자를 쓸 능력이 있다. 웬만한 길이의 글을 쓸 능력도 있다. 그런가 하면 젓가락을 쓸 능력이 있고, 계단을 오를 능력이 있으며,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도 있다. 반면에 전투기를 조종할 능력, 중력을 거스를 능력, 세금을 내지 않을 능력, 이런 것은 인간 김우섭에게 갖추어지지 있지 않은 부분이다.

접근은 실제로 어떤 일을 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이다. 지금의 나는 코를 긁을 수 있지만 손이 묶인 상태라면 다를 것이다. 지금 당장은 원한다면 차량 한 대는 구매할 수 있는 상태이나, 과거 또는 불운한 미래의 나는 그렇지 않다. 또 미국 애리조나 시내에 있는 21세 청년 라이언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행위에 대한 접근은 없지만, 유튜브에서 학부 수준의 선형 대수 강의는 얼마든지 접근할 수 있는 상태이다. 그런가 하면 라이언의 옆집에 막 이사를 와서 아직 인터넷 회선을 개설하지 못한 나 또는 어떤 사람은 정반대의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상적인 체계는 이 권한, 능력, 접근 세 가지가 일치하는 체계일 것이다. 어째서 그러한지를 나머지는 갖추어져 있지만 하나가 없는 상황을 상정하여 알아보도록 하겠다.

먼저, 권한이 없는 경우이다. 나치 독일 치하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어 있는 유대인 오토의 사례를 생각해 보자. 간수들이 소총으로 수감자들을 위협하여 가스실로 밀어넣고 있는 상황이다. 무술 훈련을 받았고 뛰어난 운동 능력과 동체 시력을 가진 오토는 자기 오른편에 서 있는 간수가 허점을 보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이라면 재빠른 손놀림으로 무기를 빼앗아 다른 간수들을 공격할 수 있을 것이며, 이 순간을 놓치면 다른 기회가 없어 보인다. 이때 오토에게는 충분한 능력도 있고 접근도 있다. 하지만 처형 대상으로서 무기를 쥘 권한은 결코 없다. 체념하지 않고 반항을 시도한다고 한들, 눈치가 빠른 다른 간수들에게 벌집이 되거나, 최상의 경우 몰려온 진압 병력에게 무력화된 후 끔찍한 고문을 받고 주검이 될 뿐이다.

그 다음은 능력이 없을 때이다. 가상의 중소기업 영천물산 영업부에는 무능한 정 부장이 있다. 이 부장은 주요 거래처 이름마저 계속 까먹어서, 골백번은 말한 이름을 들을 때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게 무엇인지 되묻는다. 컴퓨터 바탕화면에서 파일을 연다는 행위가 무엇인지 이해를 하지 못하고, 구글과 같은 검색 엔진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한 번 검색한 후에는 15분 정도 쉬어주어야 한다는 도무지 근거를 짐작할 수 없는 괴상망측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용케 혼자서 프린터를 쓸 때면 신묘하게도 기기가 연기를 뿜으며 고장나는 바람에 수시로 인쇄를 하는 건 아닐지 프린터 수리 짬 처리를 맞아야 하는 부하 직원 입장에서 전전긍긍해야 하기까지 한다. 정 부장은 영업 업무에 대해 분명히 권한도 있고 접근 또한 갖추고 있다. 다소 과장된 에피소드라고 해도 능력의 부재가 어떤 비극을 불러 올 수 있는지 이 시대의 숱한 직업인들은 절실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마찬가지로 접근이 없는 경우를 상상할 수 있다. 원전 공정 개선 프로젝트에 새로이 합류하게 된 물리학 천재 최 교수는 한국인 최초의 경사로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서, 무슨무슨 난제를 해결하여 무슨무슨 입자를 발견하였고, 무슨무슨 정리를 정립하고 무슨무슨 가설까지 제시함으로써 인류사에 길이 남을 위인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전무후무한 것에 가까운 역량과, 과기부 장관이 고등학교와 대학교 기숙사 생활을 같이 한 죽마고우라는 점이 약소하게나마 합쳐져, 그는 이례적으로 빠르게 시설 권한 심사를 통과하였다. 그러니 그에게 권한이 있는 건은 자명하고 능력 또한 아주 분명하다. 그런데, 필요한 정보를 열람하기 위해 물리적으로 필요한 열쇠가 게을러빠진 직원들 때문에 몇 주씩이나 전달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명상이 취미인 최 교수의 속은 마침내 부글부글 끓어댔고 이 소식이 대중에 알려진 후 여론 또한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반대로 나머지는 없는데 하나만 주어진 경우들을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권한만 있는 경우는 아주 나쁘지 않다. 입헌군주제가 어느 정도 그 예시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국왕은 명목상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총리를 임명하고, 의회를 해산하거나, 법률을 거부하는 등 군주라는 호칭에 걸맞는 것들이 그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입헌군주제에서 군주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으로 여겨져, 그런 행위에 대한 접근이나 능력이 권한에 걸맞는 정도라고 보기는 힘들다. 다만 이는 자신의 권한이 상징적 요소라는 점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 필요한 것으로, 업무에 관해서는 쥐뿔도 모르고 실제로 사무실에 오는 것도 아니면서 사장 아들내미랍시고 감투 뒤집어 쓰고 이래라 저래라 헛소리를 찍찍 내뱉는데 그걸 받아주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다면 직원 입장에서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것이다.

능력만 있다면, 반면에 꽤나 불행하다. 프랑스의 빈민가에 살고 있는 쥘리는 거동이 불편한 홀아버지를 모시고 있다. 학교에 나가지 못하는 날도 있지만 출석하는 날 만큼은 학업에 굉장한 열의를 보이며 성취도 또한 괄목할 만한 수준이다. 쥘리의 영특함을 눈여겨 본 수학 선생님은 학교에 있는 단말기를 이용해 프로그래밍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특별히 허락해 주었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려웠지만 호기심은 이내 열의와 즐거움으로 탈바꿈하여 팍팍한 일상에 환기점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머지않아 아버지가 병사하기 전까지였고, 학비나 생활비를 도무지 감당할 수 없게 된 쥘리는 학업을 관두고 원치 않는 산업 현장에 노동자로서 뛰어들 수 밖에 없었다. 수십 년 후에 숙련공이 된 쥘리는 IT 회사들의 전례 없고 멈출 줄 모르는 성장을 목도하며 씁쓸한 맛을 느꼈지만, 애초에 자신에게 걸맞는 본분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애써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접근만 있는 경우는 다소 우스울 수 있다. 자고 일어난 나에게 정복을 갖추어 입은 미 공군 장교 두 명이 찾아와 서류를 건네고 설명한다. 그 내용인즉슨 나에게 완벽한 상태의 F-15 전투기 한 대가 적법하게 증여되었으니 원하는 대로 사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황당한 심정으로 집 앞에 나가보니 정말로 전투기가 놓여 있다. 말끔하게 닦아 놓아 눈이 부실 지경이다. 문서가 위조된 것은 아닌지 미 국방부에 문의해본다. 시간은 다소 걸렸지만, 정당하고 착오 없는 절차에 의거한 것임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진다. 나는 전투기가 생겼는데 그래도 구경이나 해볼까 싶어 어떻게 어떻게 콕핏에 올라탄다. 다이얼이며 버튼이며 레버며 계기판 위의 온갖 요소들이 도무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음…” 하는 소리나 혀 차는 소리를 멍청하게 내면서 조심스레 두어 군데를 눌러 보다가 관둔다. 이렇게 문제가 없이 흘러갈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엔진 조작 버튼을 잘못 눌러 근처를 초토화시키거나, 무기를 잘못 조작해 인명 피해를 일으키거나, 의도치 않게 발진 또는 이륙하여 스스로 위험에 처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좋은 시스템은 권한, 능력, 접근의 세 요소가 서로 상응하는 시스템이다. 권한과 능력이 있다면, 그리고 오직 그런 경우에만, 접근이 주어지는 것이다.

계엄은 문민통제의 원칙을 벗어나 군이 사법과 행정을 통제하는 조치로서 국가적 비상 상황에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국가 지도자의 권한이다. 따라서 계엄이라는 제도의 존재는 그 자체로 조건적 권한을 암시한다. 또한 군을 지휘할 수 있음이 전제로서 필연적으로 요구되며 비상 조치라는 특성 상 그 전제가 상시 유지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에, 능력 또한 어느 정도나마 충족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권한과 능력이 이렇듯 어느 정도 확보되기 때문에, 따라서 실제 계엄이 효력을 발휘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접근이다. 이 접근은, 비상 사태에 대응한다는 그 의의에 따라, 절차와 명분에 있어서 정당성이 확보되어야만 비로소 생겨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내부적인 정당성 뿐이 아니라 외부적인 측면에서도 자칫 체제의 위기로 직결될 수 있는 계엄성을 선포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외교적 정세 또는 밑작업이 따라주어야 한다는 것은 역시나 두말할 필요가 없다.

민주주의 정치의 대원칙과 계엄이라는 제도에 대해서 얕게나마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응당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2024년 겨울, 대한민국 대통령의 사고는 그렇게 동작하지 아니하였다. 어떤 명분도, 절차도, 정당성도 없이, 정부는 시대착오적이고 황당무개한 핑계로 비상 계엄을 선포하고 군경을 동원하여 내란을 시도하였다.

이 개새끼에게는 계엄을 선포할 권한이 없었다. 2024년 한 해를 통틀어 옆집 뽀삐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가시적으로 활동한 반국가 세력은 김용현과 윤석열을 비롯한 패당 뿐이었고, 국민의 평화로운 일상을 으뜸가게 위협한 것은 반란군이었으며,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누구보다 강하게 부정한 것은, 놀라지 마시라, 대통령 본인이었고, 포고령 내용에 따라 처단당함이 응당한 것이라고 한다면 단연 1960년생 파평 윤씨로서 검사를 지내고 국가 원수가 되고 만 정신나간 독재자 꿈나무, 그 한 명 뿐이었다.

다시, 좋은 시스템은 권한, 능력, 접근이 상충하지 않는 시스템이다. 직장인 개발자로서 나는 카머시기톡 서버를 뒤집어놓을 수가 없다. 그게 뭐 하려면 어려운 것도 아니라서 나에게는 그럴 능력이 분명하게 있지만, 담당 부서 소속이 아닌 나로서는 권한이 없고, 따라서 서버에 대한 접근도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 부서에서 담당하는 서버에 관해서 엉망진창을 내놓을 권한은 마찬가지로 없지만… 애석하게도 접근은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정 상 자세하게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국내에서 일해본 개발자라면 “내가 마음만 먹으면 머시기도 할 수 있겠는데?” 싶어 껄끄러웠던 순간이 비일비재 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니까 이 경우 타 부서 서버에 관해서는 괜찮은 시스템이지만 우리 부서 서버에 관해서는 다소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여기까지 왔으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슬슬 눈치가 잡히실 것이다. 그러니까 이번 내란이 가능했던 배경은 (어디 그것뿐이겠냐만은) 명약관화하다. 대한민국 대통령 직에 있어서, 부당한 계엄에 대한 권한은 없을지라도, 결과적으로 접근이 있었다는 것이다. 범부 김우섭이 “마음만 먹으면”을 상상만 하고 있을 때 윤석열은 그걸 실제로 했다. 다시 떠올려도 며칠 전에 일어난 일이 도무지가 믿기지 않는 노릇이지만, 어디 재난 재해라는 것이 믿을 법한 방식으로 일어나라는 법칙은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이나 어느 분야를 뒤져보아도 없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정부나 국가, 무슨 이름을 붙이고 어떤 대의를 들이밀건 간에, 폭력과 권위에 대한 독점을 일체 철폐하는 것만이 인류의 유일한 구원이라고 믿은 지가 수 년 이상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이론적 또는 역사적으로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강력하지 못하며 현실에 이루어지기는 꽤나 많은 이유로 어렵다는 점 또한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현 자유민주주의 국가 체제 하에서일지라도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최대화할 수 있는 방식은 고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나의 가족, 친구, 동료, 그밖에 내가 알거나 만났거나 관여되었던 모든 사람들에 관한 일이다. 내가 그들을 특별히 여기건 여기지 않건, 좋아했건 미워했건, 개인의 차원으로서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폭력을 부당하게 얼굴에 들이미는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용납할 수 없다. 압제자의 야망을 가진 이는 꿈을 이루기 전에 먼저 나의 배를 가르고 사지를 찢어야 할 것이다. 국가라는 체제의 일원으로 우연적이게 묶인 입장으로서, 시민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한다. 대통령 본인을 포함한 위정자 전원은 현 상황 정상화를 목적으로 지체 없이 움직이며, 부당하게 남용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할 것이라면 정당한 경우에만 접근이 주어질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결사의 노력을 투사하라. 의도적으로 이를 방해하는 이들은 성난 민중의 심판을 마주할 것이며 역사와 기록에 그 추태가 각인될 것이다. 민의를 어긴 지도자는 신이 내린 황제라고 할지언정 인민의 뜻에 따라 모가지가 날아가는 신세를 면치 못하였음을 되새기고 또 되새기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