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섬인 것은 상식일까
그렇다. 존나 상식이다.
영국이 섬인 것을 아는 게 상식인지 논쟁까지 일었다는 사실은 대단히 충격적이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영국”이 섬인 것을 모르는 것. 영국은 파이브 아이즈의 일원이고 유엔의 상임이사국이며 세계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영국의 지도를 본 적이 없는 사람이 한반도에서 상식인을 자처할 수 있으려면 개화기가 마지노선이다. 영국에 대해 “섬나라인 것”을 모르는 것. 이보다 더 기본적인 정보라면 영어를 쓴다는 것 정도밖에 있을까 싶다. 최소한 입헌군주제라는 것보다는 더 알아야 할 정보가 아닌가.
영국이 섬나라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지시하거나, 그 사실에서 영향받은 내용은 영국에 대해서 잘 안다고 전혀 말할 수 없는 내가 당장 떠올릴 수 있는 것만 해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섬이지만 유럽 대륙에서 아주 얇은 해협으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대륙과 영향을 주고 받되 분명한 차이가 있었으며 그 미묘한 기류가 (해당 논쟁이 일어나기 전에 진작 끝난) 브렉시트에까지 이어졌다는 것. 언어, 종교 등에서 대륙과 확연히 구분되는 독특한 문화. 대륙법과 영미법이라는 구분 그 자체. 해군이 강한 것으로 유명했다는 점. 나폴레옹이 대륙 봉쇄령을 내린 바 있다는 점. 섬나라라는 정체성을 공유하는 일본과의 공통점 그리고 외교 관계에의 그 영향. 우중충하고 비 오는 도시의 이미지를 만든 해양성 기후.
이 사실들을 전부 하나 하나 알아야 한다고는 안 하겠는데, 상식인지 여부를 따지는 것과는 분명 연관이 있다. 지식 체계에서는 점보다 선이 더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단어, 문법 규칙, 발음 따위를 기계처럼 외운다고 영어를 잘 하는 것이 아니다. 표준 라이브러리와 유명 프레임워크의 API를 암기하는 게 프로그래밍 실력은 아니다. 단순한 점들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그 관계성을 이해하고 응용으로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선으로서의 지식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바라보면, 영국이 섬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은 그에 동반되는 지식들까지 싸그리 모를 확률이 대단히 높으며, 최소한 그 사실을 자명하게 이끌어낼 정도의 관련 지식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국이 섬나라인 걸 모르는 게 상식이 없는 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들이 대체 영국에 대해서 아는 게 뭔지, 영국이 아니라 그냥 이 세상에 대해서 아는 건 도대체 뭘지가 심각하게 걱정되는 것이다.
영국이 네 개의 큰 지역으로 나뉜다는 건 알까? 영어를 쓴다는 건 알까? 산업 혁명과 명예 혁명은 알까?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였던 건? 영국인을 대체 누굴 알까? 셰익스피어가 영국인인 걸 알까? 그 전에 셰익스피어를 알까? 영국이 아니라 다른 건? 이탈리아가 반도인 건 알까? 세계 지도에서 지중해와 대서양을 찾을 수나 있을까? 뉴질랜드가 섬나라인 건 과연 알까? 일본이 섬나라인 건? 더 나아가, 일본 제국의 무조건 항복이 1945년 8월 15일인 건? 메이지 유신이 뭔지는 알까? 들어는 봤을까? 냉전이라고 들어는 봤을까? 국공내전은? 제국주의는? 수요 공급 곡선? 르네상스? 병자호란? 원주율의 정의는? 복소수가 뭔지 알까? 관성이 뭔지 알까? 무한 동력이 불가한 이유는? 원자와 전자? 음운 변화? 공리주의? 영국이 섬나라인 걸 모르는 사람이, 영국에 대해서 대체 얼마나 알 것이며, 영국이 섬나라인 걸 모르는 걸 당연히 여기기까지 하는 사람은, 지구와 대륙과 나라들이 생겨먹은 모양이나 마침내는 역사, 문화, 예술, 과학, 철학을 비롯해 무엇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는 것일지 나는 너무나도 궁금하다. 이들에게 상식의 선은 어디냐? 지구는 둥글다? 둥근지 몰라도 먹고 사는 데 하등 지장 없으니까 상식 아니네? 뭐,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훔치는 건 나쁘다? 맞으면 아프다? 배고프면 먹는다? 어디까지 내려가야 상식이지?
결론으로는 몇 자 적었다가 도로 지웠다. 복잡한 심정이 드는 사건이었다. 참으로 인터넷 시대의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