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팀 전투에서 배우다
TFT는 나에게 애증의 게임이다. 요번 시즌이 굉장히 잘 뽑힌 건 다행이다. 아무튼 인챈트에서 대회도 열고, 대회와 무관하게 스트리머들도 꽤나 많이 하고 있던데 이번에 방송을 몇 군데 보면서 저티어 플레이어들의 특징을 좀 더 잘 알게 되었다. 저티어 플레이어들은 무엇이 문제일까? 어떤 기물, 최종 조합, 증강, 아이템이 좋은지 모르는 것? 그거야 널리고 널린 통계 사이트만 보면 나온다. 손이 느린 것? 마빵단이 되는 데에는 나같이 순발력이나 눈과 손의 협응력이 극도로 떨어져서 액션 게임이라면 학을 떼는 정도의 손놀림도 차고 넘친다. 시스템을 모르는 것? 챌린저 방송들도 보다 보면 스킬이나 아이템 세부 효과 같은 걸 모르는 경우가 생각보다 잦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난 몇 시즌 마빵단이긴 한데 대부분의 브실골 스트리머들이나 절반은 게임 안 하고 절반은 골드 언저리일 것이 분명한 대부분의 채팅창 사람들보다는 그래도 게임을 잘 알 것이다. (스트리머 플레이보다도 롤체 방송 채팅창을 보고 있으면 사람 돌아버린다. 본인이 평범한 스트리머고 티어를 올리고 싶다면 채팅창 훈수 절대 보지 마라. 차라리 믿을 수 있고 일관된 관점에서 조언해줄 챌린저나 그마를 하나 섭외해라. 심지어 채팅창 절대다수가 동의하는 경우라고 해도 그게 조금이나마 옳은 훈수인 확률은 극히 낮다.) 내가 방송과 채팅에서 관찰한, 저티어 플레이어들의 티어 상승을 막는 습관들을 적어본다.
- 기본기는 없는데 잔재주를 부린다.
예컨대 필살의 리롤을 쳐야 하는 턴에, 어디서 본 건 있어서 같은 코스트 기물을 집으면서 가는 식이다. 필요한 기물만 모아놓고 D 치면서 반짝이는 것만 집어도 충분할 텐데 그거 조금 확률 올리겠다고 꾸득꾸득 집는다. 집으면서 할 거 다 하면 문제가 없는데 십중팔구는 필요한 것만 집으면서 리롤을 쳐도 못 집을 속도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속도는 근본적 문제가 아니다. 이미 충분히 느린데 잔재주를 부리느라 더 느려진다는 게 문제다. 쓸모없는 기물이 많으니 상점에 불 들어오는 기능이 의미를 잃는다. 이러다가 창고가 다 차면 마우스 떠듬떠듬 창고로 올라가서 기물 하나씩 들여다보다가 마침내 하나를 팔고 리롤을 재개한다. 노잣돈을 두둑히 들고 폭사하는 건 차라리 호상이다. 실수로 필요한 기물을 팔기라도 하면 재앙이다. 리롤만 문제가 아니다. 당장 떠오르는 예시가 더 없지만 “어디서 들은 거”를 이상하리만치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 돈 관리 개념이 없다.
돈 관리 사실 쉽지 않다. 하지만 저티어 플레이어들은 많은 경우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이자를 안 볼 이유가 없는데 안 본다든가,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1라운드에 나온 3코스트 기물을 결사적으로 끌어안고 간다던가. 2라운드 연승 연패 관리도 하는 경우가 드물다. 메타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아이템 적고 돈 많이 나오는 스타트를 굉장히 싫어한다던가. 근데 또 희한하게 돈 주는 증강은 그렇게까지 싫어하지 않고 오히려 봤다 하면 눈이 돌아가서 집는 사람들도 있더라.
- 목표를 정해두고 게임을 한다.
장담하건대 티어가 내려갈수록 확률이나 그 시점이 앞당겨지는 정도가 심하다고 생각되는데, 게임의 최종 그림을 마음속에 정해둔다. 적지 않은 경우 이미 큐 돌리기 전에 결정되어 있고 첫 기물 받은 걸로 마음을 먹거나 2라운드에 1코스트 기물 좀 잘 뜨는 걸 기반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상당수이다. 운영을 하기로 마음먹었대도 4코스트 캐리 기물이 하나 생긴 순간 그 후로 상점이 어떻게 뜨든 해당 기물과의 영원무구한 가약을 맺어버린다. 뭐 메타나 성향에 따라 이른바 대깨를 치는 게 더 나은 때도 적지 않다. 하지만 대깨 치는 것밖에 못한다면 그건 문제라고밖에 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무작위성이 있는 게임이고 경쟁이 붙을수록 원하는 기물과 아이템을 얻기 힘들어지는 규칙이기 때문에, 초반에 체력도 어중간하게 높은데 정찰도 (당연히) 안 해서 겹치기까지 한다면 그 사람 탓, 기물 운 탓만 하다가 침몰하는 것이다. 진짜 원인은 누가 도검류를 소지한 채 겁박한 것도 아닌데 그걸 하기로 엄숙하게 선서한 자신인데 말이다. 기물만 정해두냐? 절대 아니다. 아이템도 물론 정해둔다. 삼신기를 맞추지 못하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군다. 따라서 트페는 지상 최대의 밸런스 붕괴 사기 최강 초강력 전설이고 판도라는 “게임을 이깁니다”와 비견될 정도로 막강한 효과의 증강이다. 이들에게 롤체지지 추천 조합에 나오지 않는 아이템을 만든다는 것은 감히 상상하기도 두려운 신성모독이며 캐리 기물에게 아이템 세 개를 맞춰주는 것이 십중팔구 지상 최대 과제이기 때문에 뺑뺑 돌아가는 재료 아이템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여눈 2개와 조개 1개, 벨트 2개를 든 채로 맞아 죽기라도 하면 템 억까로 순방을 못하게 만든 운빨 쓰레기 좆망 븅신겜을 하염없이 저주한다. 운으로밖에 게임을 풀어나갈 수 없는 상황으로 스스로를 끊임없이 밀어넣는 플레이를 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니 몇 판이고 같은 일이 반복된다.
- 응용력이 전무하다.
목표를 정해둔다는 것과 비슷한 원리이다. 아이오니아 상징을 얻었다고 치자. 이걸 아펠리오스나 카이사를 주면 쓸만하다는 사실을, 대개는 어떤 논리에 따라서가 아니라 그냥 어디서 봤기 때문에, 알고 있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다. 근데 아직 아펠리오스는 없고 상점에 벨베스가 운 좋게 떠 있다. 이럴 때 벨베스를 상징 줘서 잠깐이라도 쓸 생각을 하지 못하는 식이다. 응용력이 없다는 것은 금기를 신봉한다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가령 보건이 있을 때 보석 연꽃을 절대로 고르지 않는 식이다. 프렐요드가 켜져 있기 때문에 라위를 만들기 싫어서 마지막 남은 아이템을 괴상하게 조합한다거나. 이러다 보니까 일반적인 파열/파쇄 효과가 중첩되지 않는다는 사실 대신 마저/방어 감소 효과는 중복되면 손해라고 기계적으로 외워버린 나머지 럭스 스킬에 마저 감소가 있다고 이온이나 스태틱을 기피하거나 썬파가 있다고 2감쇄 후 기계 폭풍 업그레이드를 꺼리는 황당한 사고까지 보인다.
- 강약을 가늠하지 못한다.
타이밍에 따라, 상대 스쿼드에 비해, 어떤 스쿼드가 더 강하고 약한지 생각하지 않는다. 이건 챌이라고 해도 틀릴 때가 있는 문제지만 다시 한 번 말하건대 저티어 플레이어들은 이 능력이 낮은 게 아니라 순전히 결여되어 있다. 필드를 보고 강약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조합의 질을 판단하는 유일한 척도는 시너지이며, 다른 무엇보다 시너지를 더 켜거나 한 단계 올리는 것에 목숨을 건다. 쉽게 말하면 2전쟁기계 깨기 싫어서 일찍 붙은 세주아니 2성을 안 쓰는 느낌이다. 뿐만 아니라 얼마나 강해야 이기고 지는지를 알 수 없으므로 이자를 깨더라도 과감하게 리롤을 돌릴 타이밍이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거나 엉뚱한 타이밍에 리롤을 치곤 한다. 전투가 시작된다고 이 능력이 갑자기 생겨버리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전투 구도에 대한 이해가 전무하고 결과는 순수한 운빨처럼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극초반이라 해도 2성 붙는 기물을 올리는 대신 포커 패 완성하는 것마냥 시너지 켜는 데 사활을 걸기 때문에 게임을 연승으로 시작하는지 아닌지 또한 오롯이 운에만 의존하는 것으로 여긴다. 이것의 연장선으로 아이오니아 도전자에서 7, 8레벨인데 캐리 기물 2성작도 안 된 상태로 이렐리아나 세트 3성작을 하겠답시고 모으는 식으로 전투에 유의미한 영향이 없는 기물을 3성 찍으려 드는 일도 많다. 시너지를 맞추고 나면 뭐가 됐건 3성 기물 개수가 이들의 머릿속 그 다음 척도거든. 그들에게 전략적 팀 전투는 많이 모으면 모을수록 점수를 많이 받는 롤 챔피언 버전의 같은 그림 찾기이다.
그래서 내가 저티어 플레이어들을 비난하는 거냐고? 깔보고 무시하는 거냐고? 가르치는 걸까? 전혀 아니다. 나는 탑레도 겨우 마빵단이고 시즌3 유입인데도 매 시즌 초입에는 항상 헤매며 서두에도 말했지만 순발력이 필요한 게임은 스스로 보기에도 말이 안 나오게 못해서 게임 못하는 입장을 잘 안다. 이건 게임 내에는 어디에도 없는 정보이고, 소위 공략이라는 것들을 봐도 기물 조합이나 아이템 위주이지 기본기 설명이 있는 글은 드문데, 그런 글을 보더라도 따라하고 익히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방송을 하는 사람은 오디오 채우고 채팅을 신경쓰면서 집중하기가 엄청나게 까다롭다. 정보랍시고 올라오는 것도 진짜 별 “감자튀김은 채소인 감자로 만들었으니 샐러드이다”와 비슷한 수준의 훈수가 전부이기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할 확률은 더 높다. 애시당초 전문 롤체 방송인이 아닌 다음에야 유튜브 각이라도 한 번 더 잡는 게 이득이지 티어를 올리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저티어 플레이어들의 시각과 행동을 관찰하고서 알아차린 것은 첫째로 내게도 정도만 다르지 저런 점들이 있다는 것었고 그 다음은 그마챌이 보기엔 나도 어지간히 답답하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린 아이에게서도 배울 것이 있다고, 평범한 플레이어들에게서 롤체의 극의를 깨우친 우섭이는 고수가 되고 대회도 나가게 되었으며 위인전도 나오고 UN 사무총장까지 되었답니다. 해피 엔딩!
…같은 거나 쓰려고 블로그 글을 남길 정도로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 나는 아니다. 진정으로 깨달은 것은 인생의 상상하기도 힘든 거의 모든 분야에서 거의 모든 선택이 내 입장에서 더 나은 대안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선택을 하지 않는 것조차 선택임을 감안하면 누군가 보기에 나는 지금 리롤을 치거나 정찰을 할 타이밍에 멀뚱멀뚱 화면 보고 있는 셈이다. 1라운드에 갑옷과 장갑을 보자마자 침장을 만드는 꼴일 수도 있다. 심각하게는 한 게임 지면 끝장날 상황에, 상징 들어간 2성 4코 유틸 기물을 갑자기 창고에 내리고 이미 필드에 있는 시너지 셔틀 기물을 하나 더 올리는 걸지도 모른다. 놀이부터 연애까지, 소년부터 노년까지, 직업과 배우자상, 아무튼 사전에 수록되어 있거나 언어를 통해 간접적으로라도 설명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 사회적으로 합의된 어떤 정석에서 벗어나는 삶을 비난하거나 마냥 신기해하거나 철저히 예외적인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한국 사회의 닳고 닳은 프로파간다에 동참할 생각은 개미 좆물만큼도 없다. 그러나 하다 못해 그걸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내가 하고 있지 않은데 할 수 있는 것이 있거나(가령 크고 작은 사회 운동), 하고 있는데 근거와 효용이 없는 것이 있거나(가령 이 글을 쓰는 것) 뭐 그럴 거라는 느낌이 새삼 든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