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부가 재미있었다
내가 수능 공부를 했던 이유는 명확하다. 그게 재미있었다.
간략한 배경으로 시작하겠다. 김우섭은 노원구 중계본동에서 나고 자랐다. 중계동이라 함은 목동, 대치동, 중계동 순서로 칠 수 있는 학원가라는 말이 노원에서는 돌았던 거 같다. 아마 대충 학원가가 크게 있는 동네에는 저 세 번째 자리에 어떻게든 비벼대는 말들이 보통 있을 것이다. 의정부 같은 동네에서도 학원을 찾아 오는 경우가 꽤나 있었던 것을 미루어 보건대 뭐 아주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겠다 정도? 말인즉슨 교육열이 있는 동네였고 주변 환경도 어느 정도 면학을 조장하는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중학교 동창들은 한창 유행이었던 외고를 비롯해 이런저런 특목고로 진학을 했으나, 난 뭐 그런 덴 가는 애들이 가나 보다 하면서 집에서 5분 거리(진짜 개꿀이었음)인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주변의 고등학교들과는 달리 역사도 깊지 않고, 공립인데다, 남녀공학이기까지 해서 학부모들이나 학생들조차 선호하는 고등학교가 아니었다.
초등학교에 중학교를 거쳐 일러도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칠 즈음까지 나의 성적은 특출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절반을 뚝 갈라서 위냐 아래냐를 따지면 항상 위이기는 했지만 두각을 드러내는 부류는 아니었다. 가물가물한데 2학년 즈음부터 내신이건 모의고사이건 성적이 꽤 올랐던 것 같다. 학원은 동네의 작은 영어 학원을 초등학교부터 수능 볼 때까지 쭉 다녔었고, 수학은 고등학생 때 다니다 말다 했으며, 그밖의 과목은 다녀본 적이 없다. 인강은 수능 준비할 때 EBS에서 아랍어를 한 달 남짓 들어본 것이 전부라서 대학 친구들이 강사 얘기하는 건 한 번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껴보지도 못했다. 그밖에 생뚱맞게도 정시 논술을 잠깐 다녀보았는데, 이 이야기는 별도의 글로 다루고자 한다. 본인이 게으른 거 아니까 뭐 쓰겠다 뭐 올리겠다 얘기는 어지간해서는 안 하는데, 이건 좀 재밌는 이야기라서 꼭 쓰고 싶다.
그래서 따지고 보면 제로 사교육은 아니지만서도 그 동네에서 자란 사람치고, 그리고 나 정도 입시 결과를 얻은 사람치고는 제법 가성비 있었던 셈이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교과서 위주로 예습 복습 철저하게 했구요, 수능특강 열심히 풀었습니다.”에서 뒤에 절반 정도는 맞을지 모른다. 난 복습은 몰라도 예습은 살면서 해본 적이 없다. 그게 아니면 머리가 되게 좋았나? 일단 재작년인지 상태 한참 안 좋고 머리 탁할 때 웩슬러 받은 거로는 110이 나왔으니 평균보다는 괜찮은 셈이다. 하지만 숫자를 떠나 여기저기 살면서 본 진짜 머리 좋은 사람들한테 비비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판단이 더 구체적이면서도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러면 결과보다도 과정에 집중해보는 것이 적합하다. 고등학생 시절의 뜬금없는 성적 급등, 그 비결은!
처음에 말했다. 재미있었다. 그것만으로 이야기하면 듣는 입장에서 부러울 수 있고 그것만으로 따지면 내 입장에서도 좋은 결과가 나온 셈이지만 그 진상을 곰곰이 들여다보고 나면 울적해지고 만다.
내 삶은 늘,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계획과 습관으로 굴러간 적이 없었다. 언제나 충동과 강박이었다. 한때 내 입장에서조차 열정이라고 믿었던 것은 자신을 땔감으로 하는 파괴적인 불꽃이었다. 숨통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몰입과 눈과 귀를 가리는 맹목적 집중이, 나의 고유한 기질이거나 천부적인 재능보다는 보다 거대하고 고통스러운 싸움의 이면이었음을 깨닫는 데에는 30년이 덜 걸렸다. (내가 어떤 싸움을 하고 있는지는 전우 분들이라면 눈치 채실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개발도 그렇고, 나는 한번 빠져들면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한다. 반면에 무지하게 즐기고 애호하는 일, 예컨대 코딩이라고 해도 시동이 걸리지 않은 상태에서라면 의지로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이 끔찍하게 어렵고 힘들다. 그러니까 내 몸뚱아리가 무슨 행동을 하고 하지 않는지 결정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내가 아니다. 계획이라는 것은 동작할 수가 없다. 남들 보기에는 게을러 빠져서는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자기 좋아하는 것만 골라서 하는 모습으로 비출 수 있겠으나, 실상은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조차 못할 때가, 해로운 걸 알면서도 하고 싶지 않은 짓들의 구렁텅이에 빨려들어 헤어나오지 못하는 때가 일상다반사이다.
그러니까 고등학생 우섭이는 분명 공부가 즐거웠고 그걸 도무지 놓을 수가 없었고 허투루 한 것도 아니라 성적도 괜찮게 나왔지만은… 그렇게 된 사연에 자유 의지의 기여분은 없었다는 것이다. 난 공부가 재미있었다. 재미있을 수밖에 없었다.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공부만의 일이 아니었다. 하면 득이 되는 것만의 일도 아니었다. 10대 때만의 일도 결코 아니었다. 그것은 주인에게 선의도 악의도 없는 괴이한 충동이, 꿈틀대다가 기가 막힌 타이밍에 스위치를 켜주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녀석이 지독하게 말썽을 부리는 것도 모른 채 살아오다가 정말 우연한 계기로 알아내고야 말았을 때의 심정이 어땠을지를 짐작하는 것은, 음, 겪어본 사람이 아니고서야 모를 것이라는 것이 지금 드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