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을 재단하는 것은 쉽고 편하다
치안 판사의 아들로 태어나 의학을 전공했다. 졸업한 후에는 지역 병원에서 근무하다가 미국 유학 길에 올라 공공 의료에 관해 연구했다. 고국에 돌아온 후에는 미국의 지원을 받아 수 년 동안 예방 접종과 전염병 퇴치에 힘쓴다. 그의 맹목적 헌신은 존경받아 마땅한 일이었고, 사람들은 그를 칭송하여 파파 독(Papa Doc)이라고 불렀다. 이런 명망에 힘입어 아이티 대통령이 된 프랑수아 뒤발리에는 미친 독재자가 되어 6만 명에 달하는 정적을 살해하고, 전국민의 만장일치로 개헌을 하기도 하고, 부두교를 이용해 자신을 신격화하고, 지독하게 잔혹한 비밀 경찰 조직을 만드는 등, 하여간 독재자라면 생각나는 끔찍하고 미친 짓은 죄다 하다가 자기보다 별로 나을 것도 없는 어린 아들에게 정권을 물려주고 죽었답니다!
악한이 되어 버린 투사의 이야기는 셀 수도 없이 흔하다. 다크 나이트(2008)의 대사로도 널리 알려져 있듯이, 살아남은 영웅이 악당이 되고 마는 것은 필연적인 일일까? 그렇게 바라보면 단순하고 편할 수 있겠지만 나는 다른 관점에서 이런 일들을 설명하고 싶다. 바로 선인도 악인도 따로 없다는 것이다. 악한 마음을 지니고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꼭 케케묵은 선전물에 나오는 것마냥 얼굴도 우락부락하고 피부도 붉고 이마엔 뿔이 나서 손톱도 길쭉한 식으로 티가 나면 오죽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과 모두를 경계해야 하고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선인과 악인을 고정해두고 나무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손쉬운 일이다. 그러나 달콤할 만치 간편한 설명은 독이 될 때가 많고, 특히 요즘 같은 시대에는 인지적 숏컷을 피하는 게 보통 옳고 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