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노타쿤이 옳아
발더스 게이트 3의 한국어 공식 번역이 나오면서 한 번 커뮤니티가 불탔다. 불탔던 이유도 존나게 웃기고 황망하기 그지없다. Kagha
가 왜 카그하
가 아니라 코가
냔다. salt
랑 ghost
는 뭐 살트
랑 그호스트
게? 영어가 아무리 표음성이 박살난 언어래도 나름의 규칙은 있다. 주인공 빼면 대사도 싹 다 읽어주는 된 게임인데 씨이이이팔 들어보세요, 좀, 귓구녕이 뚫려 있으면. Moonrise Tower
나 Nightsong
같은 것도 왜 완역했냐던데 얘네는 Joan of Arc
가 누군지 Saint Petersburg
가 어딘지 알면 뒷목 잡고 쓰러지겠네. 영어는 무슨 신비롭고 멋있으며 고상하게 들리는 특수 어구의 집합이 아니라 지구에 살아 숨쉬는 수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의미를 담아 말하고 듣는 자연어이다.
고유명사도 고유명사지만 어투나 단어 하나 하나 다 집어대면서 별 도무지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데 그걸 지켜보는 심정이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사실까지 날조해가면서(계명성 사건) 까댄다. 글쎄, 원문으로 멀티플레이어 캠페인으로 엔딩 두 번 보면서 같이 하는 친구들한테 전해듣기로는 기존의 커뮤니티 번역도 개판 오 분 전이기는 매한가지던데.
테이블탑 원작과 시리즈 전작의 괴팍한 한 줌 팬덤이 줄기를 지탱하고 있는 건지, 예정에도 없던 공식 번역이 나온 걸 조금이나마 다행으로 여기기는 커녕 정의롭고 지고한 번역 용사가 되어 “오역”들을 하루 종일 지적하고 “바로잡기” 위해 궂은 일을 자처하는 분들까지 계셨다. 그냥 나는 이걸 본 이래로 하루 한 번 한영사전을 꼭 붙든 채로 공중제비 21억 바퀴씩 돌면서 불알로 박수를 치고 있다. 위인들이시다. 대통령실은 특별 훈장 수여하고 세제 혜택과 자녀 대입 특혜까지 당장 신설해라.
오늘 하려는 그리고 언제나 하고 싶어서 러프하게 뼈대만 잡아두었던 이야기는, 번역이란 니가 생각하는 그 작업과는 거리가 멀어서 공식 번역이건 커뮤니티 번역이건 게임이건 영화건 책이건 대화건 나발이건 뭐가 됐든 표현과 의미를 정확하게 옮긴 번역 같은 건 원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매년 부산에서 참가하는 행사가 있는데 작년엔 어쩌다 보니 부산에 세 번이나 다녀왔다. 이번에는 그 악명 높은 Busan is good
슬로건을 보고야 말았다. 전 서울 시민으로서 기분이 묘했달까. 부산이 그냥 그렇다는 이 문장이 도시를 나타내는 공식 문구가 되어버린 데에는 어떤 배경이 있었을까? 부산이 좋다는 문구를 단어 대 단어로 치환하면 이 문장이 된다. 지극히 당연하다. good
은 좋은 거고 좋은 건 good
이니까. 문제는 좋다
와 good
은 결코 같지 않다는 것이다.
한 언어 안에서 단어와 어구의 의미는 결코 점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선이고 면적이고 덩어리이다. 인간의 정신으로 포착할 수 있는 다양한, 어쩌면 무궁무진한, 의미의 세계에서 특정한 좌표를 콕 찍으면 그것이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의미는 다른 개체와의 복잡미묘한 관계 그리고 상호작용으로 결정되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한다. 좋음
과 나쁨
이, good
과 bad
가 각각을 정의하는 데 있어 서로 관여되지 않을 수는 없다. 사전이나 특히 옥편을 찾아볼 때 서로가 서로의 정의를 물고 늘어지는 열받는 상황이 실은 무엇보다도 언어 의미의 본질을 잘 붙잡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단어 하나를 이야기할 때에도 이러한데, 문장과 더 나아가 담화를 이야기할 때에는 더욱 복잡할 것이다. 각 언어는 다양한 층위에서 서로 다른 구조와 모양을 띠고 있다. 그것이 공통 요인에 더하여 변인이 작용해 만들어진 결과이든 아니든, 두 개의 언어에서 실체화된 기표 뒤의 기의를 비교하고 옮기기까지 하는 것이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은 그렇게 까다로운 작업이 아니다. 이건 발화의 전후 맥락이나 문화적 함의, 언어 유희, 고유명사의 번역 같은 요소들을 전부 빼놓고 따졌을 때의 이야기이다. 이들이 달려들기 시작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생각하는 것은 순전히 그게 언제나 발생하는 일들이기 때문에 악몽이 아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지구의 태평양은 화성의 어디에 해당할까? 식물의 엽록소는 초파리의 무엇일까? 파란색을 소리로 옮기면 무엇일까? 답이 떠오르는가? 떠올랐다면, 거기에 전문가든 아마추어든 아무도 이견을 표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프랑스어의 대명사 on
은 한국어의 무엇이며, 일본어의 それで大丈夫です
는 중국어의 무엇인가?
이런 종류의 질문에 “정답”을 낼 수 없는 인간 또는 존재는 다음과 같다.
- 명망 높으며 뼈가 굵은 전문 번역가
- 업계 사정, 촉박한 마감, 기타 불필요한 장애물에서 자유로우며 서로 의견을 나누고 끊임없이 발전하는 한 무리의 자원봉사자
- 일생을 번역 이론과 실천에 바쳐 정교한 기술을 누구보다 더 깊게 깨우친 백발의 교수
- 한국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를 두어 다작을 할 뿐 아니라 끊임없는 대중과 평단의 극찬을 받는 천재 대문호
- 한 쪽은 필리핀에, 한 쪽은 벨기에에 입양되어 서로 텔레파시로 연결하여 생각과 감정을 조금의 손실도 없이 공유할 수 있는 일란성 쌍둥이
- 마침내 인간은 물론이고 존재할 수 있는 그 어떤 연산 체계보다 우월한 성능을 달성하여 불확정성 원리와 열역학 법칙마저 넘어선 궁극의 인공지능
- 전능하고 전지한 신격자
누가 와도, 어떤 낙관적이고 허무맹랑한 상상을 해도, 그 어떤 초지능을 동원해 완벽한 존재를 가정해 보아도, 언어 간에 의미를 정확하게 옮기는 일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아니라고? 잘 된 번역의 예시가 지금 내 머릿속에 마구마구 떠오른다고? 엔트로피는 냉장고 안에서 역전하니까 열역학은 개구라네?
누누히 말하지만, 누누히 말했는지는 모르겠고 이 글 말미에서 암시한 바와 같이, 원어를 아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널 위해 번역해줄 수 있는 존재는 그 누구도 없다. 인류 역사의 그 숱한 학자들이 원서를 읽기 위해 외국어 공부를 하는 것은, 그들이 쓸데없이 뭐 하나 더 배우는 느낌만 내는 걸 좋아하고 남들처럼 번역서 보면 죽는 줄 알며 허세만 든 병신 오타쿠 또라이들이라서도 아니고, 시간이 남아돌아서 밥만 축내는 개백수 한량 쓰레기들이라서도 아니고, 번역 작업을 대신 맡길 사람도 돈도 없는 찐따 거지 바보 새끼들이라서도 아니다. 고작 번역 같은 걸로는 의미를 정확하고 온전하게 포착하는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니까 번역가들 묶어놓고 패는 그림으로 보일까 걱정인데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오히려 그 반대이다. 업무가 되건 게임이 되건 손쉽게 가능한 일보다 빡빡한 제약 속에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더 짜릿한 법이다. tackling the impossible은 언제나 멋있고 그게 내가 종종 번역이란 작업과 아이디어에 매료되는 이유이다. “이걸 했구나”보다도 “이걸 어떻게 했지?”가 경이에 가까운 것이다.
결국 평범한 문화 향유자로서의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영상의 번역된 자막과 음성 원어의 빈번한 불일치를 깨달을 수 있는 정도로만 외국어를 습득할 능력과 여건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가급적이면, 가급적이면 언어를 깊게 배워라. AI 애플리케이션 활용이 되었건, 영화 관람이 되었건, 게임 플레이가 되었건, 책과 논문을 보건, 원어를 모른다면 진정으로 알 수 있는 영역은 확연히 줄어든다. 화자가 매우 적고 자료의 양과 질 또한 극도로 떨어지는 한국어 같은 언어의 구사자라면 외국어를 알아야 할 필요는 더욱 더 절실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