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 생물 자본주의
레우코클로리디움 파라독숨이란 학명을 지닌 생물은 인터넷에 적잖이 회자될 정도로 독특한 생태를 나타내는 기생충이다. 이 종은 새에게 기생하지만, 새에게만 기생하지는 않는다. 처음에는 달팽이를 “중간 숙주”로 삼는다. 최종 숙주에게로 갈아탈 시기에 이르면 이 녀석은 달팽이의 눈으로 이동하여 맛있는 애벌레처럼 보일 수 있도록 그 속에서 뚱뚱하고 알록달록한 몸뚱아리를 꿈틀거린다. 이때의 충격적일 정도로 징그러운 모습도 그 유명세에 한몫하지만, 더 중요한 부분이 있다. 바로 달팽이 숙주를 조종하여 더 눈에 띄는 곳, 더 높은 곳으로 움직이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새에게는 너무나 맛있어 보이는 쉬운 먹이감이다. 기생충은 마침내 최종 숙주인 새의 몸에 도착하게 된다.
기생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고 이런 식으로 숙주를 조종하여 심하게는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종도 물론 이 녀석이 끝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인터넷에서 꽤나 인기(?)를 얻어 마침내 영화 주인공까지 등극한 연가시가 유명하고, 쥐를 겁이 없도록 조종해 고양이에 이르는 톡소포자충, 개미를 풀잎에 오르도록 조종해 초식 동물에 이르는 창형 흡충도 대중적으로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숙주에 의존해 생명을 이어나가지만 환경을 조작함으로써 생존할 수 있다면 숙주를 얼마든 이용해먹고 버릴 수 있으며 심지어 본능에 반하는 죽음을 유도하기까지 하는 기생 생물의 특성이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람들은, 우리는, 기업이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잠깐 되새겨 보자.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조직체. 그리고 이익을 쫓는 과정에서 시장 원리가 동작하며 번영과 발전을 불러온다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기초적인 상식이자 으뜸되는 교리일 것이다. 이는 사회와 기업 수준의 거대한 구조에만 해당되는 원리가 아니라, 각 개인의 삶까지 스며들어 만인이 능력에 따른 보상과 근면성실의 미덕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설파하도록 만드는 근거가 된다. 경영진과 노동자의 임금 격차가 자본주의 질서가 무르익음에 따라 끝도 없이 벌어지는 것은 따라서 지극히 당연하며 전혀 놀랍지 않게도 권장되는 수순이다. 부유함과 유능함이 동치 관계라면 가난함과 무능함이 서로 다를 이유는 없다. 부자는 옳고 빈자는 그르다.
자, 아니죠? 개소리죠?
뭐가 왜 어떻게 틀렸는지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분량에 안 맞는다. 그건 책 몇 권을 쓸 수도 있는 내용이고 한 트럭 실어다 보여줘도 안 믿는 사람들은 안 믿을 테니까, 단단히 틀렸다고 일단 해두자.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본주의 원리가 만인의 번영과 영광에 이른다고 믿는 것과 기생충이 나를 활력과 건강으로 이끌어줄 것이라 믿는 것이 비슷하게 헛된 소망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