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 분쇄기와 고통 연결체
영어 웹의 밈이다. 이런 소식을 들었다고 생각해보자. “아무개가 고아 분쇄기(orphan-crushing machine)에 갈릴 위기에 처한 고아 몇 명을 구출!” 이때 올바른 반응은 무엇일까. 와, 정말 대단하다. 고아들을 구했구나. 정말 영웅이고 이타적이고 용감하네. 땡이다. 대체 애진작에 시팔 고아 분쇄기가 뭐 때문에 있는 건데?
그러나 이것이 단순한 비유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과 일상의 문제가 될 때 우리는 그런 사고를 하지 못한다. 우리의 사회는 도처에 고아 분쇄기가 있다. 그것은 질서의 기둥이요, 경제의 원칙이요, 미덕이자 상징으로서 때로는 성물이다.
사람들을 보라. 고아 분쇄기가 있건 없건 무슨 상관이냐는 사람. 고아 분쇄기에 동의하지 않지만 생계의 문제를 의지하는 사람. 고아 분쇄기가 고아 분쇄기가 아닌 것처럼 구는 사람. 고아 분쇄기를 칭송하는 사람. 고아 분쇄기에 고상한 이름을 붙이면 다인 줄 아는 사람.
설령 “번영”이나 “영광”으로부터 멀어지는 일이라고 할지언정, 우리는 고아들을 으깨는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그런가 하면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SF와 관련된 밈도 있다. 고통 연결체(Torment Nexus)란 개념으로, 과학의 오용을 경고한 소설 <고통 연결체를 만들지 말 것(Don’t Create The Torment Nexus)>에 나오는 고통 연결체를 만들어냈다고 자랑하는 회사가 등장한다는 상상이다.
이것도. 좀. 제발.
고아 분쇄기를 쓰지 말 것. 고통 연결체를 만들지 말 것.
어려운 일 아니잖아. 왜 대단히 어려운 일인 것처럼 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