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점과 99점
적어도 한국에는 흔한 괴담이 하나 있다. 전교 1등이 문제 하나를 틀려서 울고 불고 그러더라 하는 것이다. 이 괴담은 꽤 빈번히 통용되고, 말하지 않아도 청자들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감정을 공유한다. 고작 하나 틀렸다고 울어? 일단 여기서 불순하다. 실패 앞에서 좌절하는 모습을 보고 괘씸함을 느끼는 것이 첫째로 불순하고 자유 시민의 감정 표현을 통제하고 싶은 것이 둘째로 불순하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이건 분명히 험담이고 적지 않은 경우 지가 왜 우냐는 조소나 푸념이 뒤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이야기를 하려 한다.
100점과 99점 사이에는, 99점과 98점보다 훨씬 더 큰 차이가 있다. 뒤집어서 말하자면 0점과 1점 사이에는, 1점과 2점 사이보다 훨씬 더 큰 차이가 있다. 100점 만점일 때의 이야기이다. 시험 성적은 단순히 개인의 학업 성취에 좌우되지 않는다.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출제 난이도이다. 불수능이면 90점을 받았을 사람도 물수능이면 100점을 받을 수 있다. 매년 수능 난이도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출제에 있어 변별력이라고 하는 것이 여기서 온다. 난이도를 구성하는 요인 또한 다양하다. 신유형이 도입된다던가, 말장난을 심하게 한다던가, 심각한 경우 출제 오류가 있어 헷갈린다던가. 넓게 보면 3번 선지가 5번 반복되는 것과 같은 해괴한 문제 배치도 있을 것이다. 시험장의 분위기나 상태도 아주 중요하다. 수능을 보러 들어갔는데 말도 안 되게 기이한 차림이나 머리 모양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험 내내 기침을 한다거나, 코를 훌쩍이고, 다리를 떠는 것도 상상해볼 수 있다. 건강 상태나 생활 습관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감기에 걸려 머리가 아프면 당연히 집중하기 어려울 것이고, 전날 밤을 샜거나 평소에 밤낮이 바뀐 생활을 지속적으로 해왔을 때에도 제 실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이 각각의 요소들이 이미 운에 좌우되는 부분이 있지만 운 그 자체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극단적으로는 시험지를 받기 직전까지 보던 내용이 고난도 문제로 나오는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그러니까 100점을 목표로 한다는 것은, 굳이 숫자로 표현하자면 110점, 120점 정도의 점수를 이 수많은 요인들과 무관하게 받을 수 있는 준비를 해두어야 한다. 점수가 정규분포를 따른다고 했을 때 100점을 한 번 받았다는 건 그 시험에서 평균의 오른쪽 어느 지점을 넘겼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시험을 볼 때 결과가 항상 같은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요인에 따라 변화할 수 있음을 고려한다면 그 문턱에 겨우 걸치는 정도의 준비로는 안심할 수 없음이 당연하다. 수험생일 때의 나는 이걸 명시적으로 깨닫고 있었고, (그렇다고 내가 울어본 적은 없고,) 어느 수준을 넘은 사람들은 무의식적이건 의식적이건 전부 알고 있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이때 어느 수준이란 건 손에 꼽을 천재의 수준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런 이들에게 100점이 아니라 99점을 받았다는 것은 단순히 100점에서 1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110점에서 11점, 120점에서 21점, 어쩌면 그보다도 큰 만큼의 하락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자존심이 높다든가 하는 이유에서 이걸 감정적으로 이겨내지 못한다면 남 잘난 꼴 못 보는 이 사회에서 하나 틀려서 울더라 하는 괴담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는다면 괴담으로 남지는 않는다는 것이, 하나 틀려서 우는 누군가의 모습을 괴담으로만 소비해온 사람들을 위한 나의 해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