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랗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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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 큰 안경을 맞췄다. 난 복무 기간 동안 베레모 쓸 일이 없었기 때문에 얼마 전까지 59호인 줄 알고 있었는데 60호였다. 그것도 그렇고 이런 저런 이유로 큰 걸 써보고 싶었다. 결론은 시야가 탁 트인 느낌이다. 새 안경, 새 렌즈라 그럴 수도 있지만 테의 위치가 다르다. 가까이서 거울을 보면 눈이 조금 몰려 보이는 것도 같은데 아무튼 편하다. 어차피 사람들 큰 안경 많이 쓴 지 좀 되지 않았나? 나는 근시 정도도 크지 않아서 왜곡도 봐줄 만 한 듯하다. 관자놀이도 훨씬 편하다. 따로 피팅도 아직 안 했는데 이게 나은 것 같다.

최근에는 또 립밤을 하나 구했다. 인중 밑에서 꿀 향이 솔솔 올라오는데 이게 은근 중독성이 있다. 덕분에 열심히 바르고 나니 입술 갈라진 게 훨씬 덜해졌다. 부드러운 꿀맛 입술을 가진 남자가 되어버렸다.

중국산 저가형만 써봤는데 며칠 전에는 무선 이어폰을 기어코 사고 말았다. 실은 아직도 이걸 단기간 내에 잃어버리지 않을 자신이 없다. 그래도 목이랑 턱 끝에 끈이 스치지 않으니 훨씬 편하고, 케이스가 배터리를 겸하니 사용 시간도 크게 늘었다. 케이스도 더럽게 예쁘고 노이즈 캔슬링도 실하다.

그밖에도 눈치를 보건대 아마 남들은 다 신경쓰고 갖추면서 살아가는 것 같은 몇 가지를, 이제서야 비로소 마음쓰기 시작했다. 어떤 계기로 체중 감량도 시작해서 이미 적지 않게 줄었다. 전시나 공연도 조금씩 알아보고 일정을 잡기 시작했다. 단 한 번 해본 해외 여행에도 갑자기 사로잡혀서 여러 군데를 알아보고 공상하고 있는데 역시 망상이 제일 즐겁다.

내 일생은 계획과 습관이 아닌 충동과 강박으로 가동되었다. 새로 가지게 된 이 여러 가지 생각과 행동들이 안경, 립밤, 이어폰만큼이나 마음에 든다. 이것들이 새로운 충동으로, 새로운 강박으로 자리잡았거나 그렇게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