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음의 표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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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전긍긍, 매달리고 애걸하고, 불안과 실망과 슬픔에 떨 필요가 없다. 많은 것이 쉽게 사라지거나 변하고, 그리 되기 전에도 나와는 유리시킬 수 있다.
명상을 얼마 간 해와서인지는 몰라도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소위 과몰입이 상당한 수 불행과 드라마의 씨앗이다. 몇 년, 몇 달, 심지어는 몇 분이 지나서도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고민들이 있다. 불가해한 고민에, 고유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니 당장 그 순간에라고 무언가를 무언가라고 떠받들 이유도 없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간절한 양 구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모두가 행동하고 있지만 우리는 전부 굳게 속고 있는 셈이다.
눈을 감고 피부의 경계를 느끼고 발과 엉덩이에 가닿는 감각과 무음이라고 여겨온 환경음의 자극이나 들숨과 날숨이 드나드는 그런 일에 신경을 쓰는 것만큼은 중요하겠지만, 걱정에 떠내려갈 필요도 그만큼 없다고, 그래서 그런 불현듯 떠오른 믿음에 맞추어 살도록 의식을 기울이는 중이다. 근래 며칠 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