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도청 음모론
“우리 집에 귀신이 나와요”는 단순하고 구체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굉장히 대범하고 또 불분명한 주장이다. 인간의 사후 형태(밝혀진 바 없음) 중 하나로서 영혼(밝혀진 바 없음)으로부터 발생한 초자연적(밝혀진 바 없음)인 존재이며, 물리 현상을 무시(밝혀진 바 없음)할 수도 있고, 어쩌면 꿈에 간섭(밝혀진 바 없음)하는 것을 포함해 온갖 섬뜩하고 기이한 행동을 할 수 있는데, 서양의 유령에 가까운 형태일 수도 있고, 동양의 귀신에 가까운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퓨전 한식마냥 섞인 걸 수도 있는데, 아예 독창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귀신이 나온다는 집에 찾아갔다고 생각해보자. 물건이 사라지며, 가구가 쓰러지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소리가 난다고 한다. 집을 슬쩍 보니, 낡고 오래되어 보수한 흔적도 없고, 청소도 안 되어 있고, 방범 장치도 없다. 그러면 이게 인간의 사후 형태(밝혀진 바 없음) 중 하나로서 영혼(밝혀진 바 없음)으로부터 발생한 초자연적(밝혀진 바 없음)인 존재이며, 물리 현상을 무시(밝혀진 바 없음)할 수도 있고, 어쩌면 꿈에 간섭(밝혀진 바 없음)하는 것을 포함해 온갖 섬뜩하고 기이한 행동을 할 수 있는데, 서양의 유령에 가까운 형태일 수도 있고, 동양의 귀신에 가까운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퓨전 한식마냥 섞인 걸 수도 있는데, 아예 독창적인 것일지도 모르는 무언가의 소행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일까, 아니면 도둑이 드는 낡아빠진 집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일까? 더더군다나 물건이 사라지거나 가구가 쓰러지거나 한다는 것은 근거가 아니라 또 다른 주장에 불과하다. 증거랍시고 보여준 몇 없는 영상에는 귀신의 흔적은 특별히 없고 다 망가진 바닥 위로 아슬아슬하고 삐딱하게 세워진 가구가 천천히 쓰러지는 모습이다. 아무리 봐도 여전히 더 쉬운 설명이 있다. 귀신이 없다는 증거도 없지만, 입증의 책임은 이쪽에 없다.
“내 스마트폰이 대화를 엿듣고 광고를 보여줘요”도 마찬가지로 불분명하면서 대담하다. 기기의 마이크(권한 필요함) 입력(불필요한 정보 많음)을, 백그라운드에서 상시 감시(배터리 살살 녹음)하다가, 녹음(저장 공간 살살 녹음)해서 그 음성 데이터를 전송(네트워크 상황 탐, 대역폭 살살 녹음)하여, 서버에서 음성 자연어 처리(돈 살살 녹음)를 함으로써, 막대한 법적, 윤리적 리스크를 들여가며 한다는 게 고작, 그렇게까지 할 필요도 없이 잘만 동작하고 있는 광고 타게팅인데, 여지껏 내부고발도 한 번이 없고, 온세상 해킹에 미친 인간들이 뭐 하나 써먹을 거 없나, 미국이랑 빅 테크 미워 죽겠는 사람들이 어느 거 하나라도 힐난할 거 없나, 사족을 못 쓰고 혈안이 되어서 백날을 클라이언트를 뜯어 보고 있을 텐데도, 명백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이 대규모의 사악한 오버 테크놀러지 기술이, 아무도 못 알아채는 비공개 프로젝트로 개발되고 있는데, 놀랍게도 수지타산까지 맞는다? 그런데 그건 애플(광고 회사가 아님)일 수도 있고, 메타나 마이크로소프트(모바일 회사가 아님)일 수도 있고, 구글(음… 솔직히 얘네라면 크게 놀랍지 않지만 그럼에도 아닐 확률이 월등히 높음)일 수도 있고, 아예 작은 회사(돈도 능력도 없음)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복잡하고 놀라운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내가 겪어봤다”는, 근거가 아닌, 또 다른 주장이다?
“배터리 덜 쓰려고 특정 위치나 시점에서만, 혹은 음성 대역만 감지해서 녹음할 수도 있는데요?” 밝혀지지 않은 복잡성을 설명하기 위해 더 큰 복잡성을 상상해내는 것은 보통 좋은 결말로 이어지지 않는다. 더더군다나 이 또한 근거가 아니라 주장이다. “새 기기로 해본 실험 영상도 있는데요?” VPN을 쓰거나 하지 않은 이상 평소 사용하던 환경과 IP가 겹쳤을 것이다. 기기에 연동한 계정이 동일했을 수도 있다. 물론 우연일 수도 있다. 실험(?)을 해서 단 한 번이라도 우연히 얻어걸린 사람들은 신나서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겠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사람들은 그만큼 호들갑을 떨지 못할 것이다. 이런 주장은 어떤가? 사실 마이크로 녹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뇌파를 읽어내는 최첨단 특수 칩이 전세계 스마트폰에 내장되어 있어서 그걸로 생각을 탐지하고 광고를 내보내는 거다. 내게는 주요 논지를 상당 부분 공유할 수 있는 도청 음모론과 허무맹랑한 정도에 있어서 유의미한 차이가 없어 보인다.
쉬운 설명은 따로 있다. 인구의 대부분은 디지털 프라이버시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어서, 광고 차단기를 쓰는 것도 아니고, 구글 검색, 지도, 지메일, 드라이브, 크롬이나 엣지 그냥 잘 모르니까 남들 쓰는 거 그대로 따라서 쓰고, 페이스북이랑 인스타그램도 쓰고 싶은 만큼 쓰고, 어디 가입할 때에 소셜 로그인 달려 있으면 또 쓰고, 안드로이드면 구글 계정, 아이폰이면 애플 계정, 윈도면 마이크로소프트 계정도 사용하는 기기 처음 설치할 때 연동하라고 시키니까 시키는 대로 다 연동해뒀고, 스마트 티비니 에어컨이니 뭐시기 아무튼 스마트한 전기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스마트 변기 같은 것일지라도 가능하다면 전부 인터넷에 연결한 상태로 쓰고 있다. 이러면 빅 테크 입장에선 연령대, 성별, 구사 언어, 사용하는 기기의 종류와 정보, 주야간 활동 지역은 물론이요 더한 것도 애저녁에 알아두었다. 이 요소 하나 하나는 크고 막연한 것일지 모르지만 하나씩 겹쳐서 보다 보면 관심사를 특정하는 것은 굉장히 쉽다. 예컨대 보통의 40대 초반 남자 판교 직장인이, 용인에서 서울 남부로 통학하는 평범한 20대 여자 대학생이, 모년 모월과 같이 아주 한정되고 특정한 시기에 관심을 가질 만한 대상은 기껏해봐야 거기서 거기이고 뻔히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조차 하지 못한 채 하는 다양한 행동을 통해 여러분의 개인정보는 끝도 없이 쌓여가고 당연스럽게도 이 쉬운 추측의 정확도는 무난하게 올라간다. 독심술이 아닌 다음에야 엉뚱한 광고가 나올 때도 있지만 관심 없는 광고를 보았다는 사실까지 저장되는 식으로 인간 기억이 동작하는 것은 절대 아니고, 딱 들어맞는 광고를 봤을 때의 기억이 선택적으로 저장될 뿐이다. 어느 날 문득 생각한다. 내가 기억하는 광고들은 전부 관심 있는 광고들 뿐이었다. 이렇게 정확한 데에는 분명 이유가 (스포일러: 정답은 “그렇지 않은 것들은 보지도 않고 넘겼으니까”) 있을 것이다. 기업의 사용자 추적 기술에 대해서 별다른 배경 지식이 없는 상태로, 알고 있는 선의 가능성을 끌어모아 가설을 얼기설기 급조해낸다. 나와 항상 함께 있는 이 스마트폰. 나는 분명히 도청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주장이 점차 공유되면서 전세계적인 집단 히스테리가 시작된다.
문제는 누가 맞고 틀리냐 혹은 가능성이 있냐 없냐 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내용을 퍼뜨리는 일에는 이미 실재하는 것으로 알려진 위협을 은폐하는 효과가 있다. 다시 말해 역정보는 정보의 부재보다 무섭다. 낡고 무너져 가는 집을 귀신이 나오는 집으로 퉁치고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과 일단 손 쓸 수 있는 만큼 청소도 하고 수리도 좀 해두는 것은 설령 나중에 밝혀지기를 정말로 귀신이 나오는 집이었다고 해도 명백하게 차이가 있다. 설득력이 떨어지는 음모론을 무책임하게 확대 재생산하는 것보다는, 광고 차단기 설치를 비롯해 뭐라도 하나 더 알아보고 프라이버시를 위한 조치를 하나씩이라도 취하는 쪽이 자신에게나 공동체에게나 명명백백하게 더 도움이 되는 것이다.
평소에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왔지만 허무맹랑한 뉴스가 여러 군데 공유되었던 김에 생각을 글로 정리했다. 레딧의 privacy 섭에서는 관리자가 말도 안 되는 거 그만 좀 올리라고 아예 스레드에 댓글 고정까지 해놓았을 정도이니, 이 글의 내용은 나만의 괴팍하거나 독자적인 주장이라고 보지 않는 것이 옳다.
Would you like to buy a bridge from me? ianloic
Extraordinary claims require extraordinary evidence. tambourine_man
Turns out, surprise surprise, it wasn’t true. Busy-Measurement88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