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문서

2632바이트

관심 있는 케이팝 그룹이 생겼다고 쳐 봅시다. 그러면 그 그룹의 공식 계정을 팔로우하고, 공식 발매된 음원과 공식 뮤직 비디오를 찾아보고, 멤버들이 직접 나오는 컨텐츠를 찾아보고 먼저 그러는 일이 보통 순리이겠죠. 그런데 그 전에 어디 LA 아마추어 댄싱 그룹의 커버 영상만 찾아보고, 팬 리믹스 음원만 듣고, 뭐 이미 공식 컨텐츠 다 긁어먹고 그러는 거람 모를까 본말이 전도된 그림이라면 영 이상하지 않겠어요?

아니면 새로이 종교에 귀의했다고 해봅시다. 여러 이유로 원어 경전은 읽지 못하더라도, 내가 나가는 사원이나 기관에서 주는 것을 읽어야지, 어디 인터넷 검색 해서 나오는 발췌본만 종일 들여다 보는 게 합당하고 수순이 맞나요?

이민을 갔다고 쳐보자구요. 좋아하는 곳이든 아니든, 익숙하든 아니든, 이 나라에 살아보는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면 분명 체제나 관습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이때, 지역 주민들과 교류하면서 분위기와 문화를 익힘과 동시에 관공서에 비치된 자료나 각종 강의 등을 통해 제도를 배우는 방법이 있겠죠? 그런가 하면 제목에 느낌표 많고 섬네일 요란하고 자막 산만하게 나오는 유튜브 채널과 광고가 사방천지에 도배되어 있는 양산형 AI 생성 블로그를 검색해서 백날 들여다 보는 방법도 물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 중에 어느 쪽이 더 사리에 맞고 여러분이 행하고 싶은 방법인가요.

그런데. 왜. 국내 개발자 여러분은 공식 문서를 읽지 않습니까. 어째서 열화된 자료만을 도리어 적극적으로 찾아봅니까. 어째서 틀릴 수 밖에 없는 저급 번역과 엉뚱하고 괴팍한 해석으로 점철되고 오염된 게시물을 좋다고 손도 안 씻고 집어먹습니까. 어째서 자동으로 업데이트될 수도 없고, 오픈 소스 공동체의 공개적이고 규모 있는 검증을 거친 것도 아니며, 내용을 검색해볼 수도 없는 두꺼운 양산형 개발 서적을 책상에 높게 전시해둔 채, 가장 귀중한 자원인 시간을, 내 것뿐이 아니라 남의 것까지, 덜컥 집어다가 쓰면서 그룹 스터디를 하는 것이 정보를 습득하는 몹시 우수한 경로라고 철썩같이 믿습니까. 대체 무슨 이유입니까. 무슨 꿍꿍이입니까. 거울과 눈을 맞추고 잠깐이라도 반문해 주십시오.